2008년 12월 10일 수요일

어설픈 천재의 대표적인 케이스

2008년 12월 11일 (목) 10:34  오마이뉴스
이천수는 왜 이카루스가 되었을까

[[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이천수 선수. 사진은 지난 2006년 5월26일 저녁,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축구대표팀 평가전에서 공을 몰고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는 이천수 선수의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라운드의 풍운아' 이천수(27)가 축구인생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 계속된 부상으로 챔피언결정전 엔트리에서도 제외됐던 그는 이제 소속팀 수원 삼성에서도 입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 7월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를 떠난 뒤 1년 임대 형식으로 K리그로 복귀한 이천수는 올 시즌 4경기 1골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만을 남긴 채 부상으로 그라운드에서 모습을 감췄다.

여름 비시즌간 많은 기대를 받으며 수원에 입단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팀 우승에 기여한 부분이 거의 없는 데다, 더딘 재활과 불성실한 훈련태도로 최근에는 구단과 불협화음까지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천수가 만일 수원과 임대 연장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K리그 내에서 다른 구단에 재임대되거나, 소속팀 페예노르트로의 복귀 혹은 J리그행같은 '제 3의 길'까지 모색해야할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 이천수가 선수생활의 중대한 기로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이미 페예노르트에서 마음이 떠난데다 수원에서도 전력외 선수로 분류되며 '문제아'로 낙인찍혀 몸값도 적지 않은 이천수를 원할만한 팀은 보이지 않는다. 자칫 2년 전 안정환처럼 진로가 표류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올해 나이 27세, 축구선수로서는 한창 전성기를 풍미해야할 시기이고, 불과 1년 전까지 국내 최고 선수로 꼽히면서 유럽무대에서의 성공을 꿈꾸던 이천수로서는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현실이라 할만하다.

최고 선수로 꼽히던 이천수, 왜 이렇게 됐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천수의 몰락은 한때 '한국축구의 미래'로 평가받던 그의 전성기를 기억하고 있는 팬들에게 격세지감이다. 이천수는 박지성-이동국 등 2000년대 한국축구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밀레니엄 1세대'의 간판 주자로 꼽히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부평고 시절부터 전천후 득점기계로 명성을 떨쳤던 이천수는 2002 한일월드컵과 2006 독일월드컵, 2000~2004 올림픽, 2007 아시안컵 등에서 국가대표로 발탁되며 축구 선수로서 최고의 엘리트 코스만을 거쳤다. 2005년에는 울산 소속으로 팀의 K리그 우승을 이끌며 MVP에도 선정되는 등 커리어 최고의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이천수는 축구선수로서는 비교적 왜소한 체구(172cm·62kg)에도 불구하고, 지기 싫어하는 악착같은 승부근성과 뛰어난 돌파력, 정교한 프리킥 능력 등을 두루 겸비해 K리그의 '사기 유닛'으로 불렸다. 현재 해외무대에서 활약 중인 대표팀 선배 박지성이나 이영표보다 먼저 주목받은 것도 이천수였으며, 재능만 놓고 봤을 때는 오히려 해외파 선배들보다 월등한 잠재력을 가졌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재능은 노력과 비례하지 않았다. 이천수는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도 자기관리 부족과 경박한 언행으로 자주 구설에 올랐다. 2002 월드컵 직후에는 자서전에 대표팀 선배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실어 논란에 휩싸였고, 2003년에는 K리그 경기도중 상대 서포터즈와 신경전을 펼치다가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려 징계를 받았다. 또한 2005년에는 거친 플레이로 퇴장당하며 심판에게 욕설을 퍼부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06년에는 대표팀 해외원정을 마치고 귀국한 자리에서 소속팀 울산이 자신의 해외진출을 보장하지 않을 경우, K리그 경기를 보이콧할 수도 있다는 돌출발언을 해 여론의 지탄을 받아야했다.

이천수 축구인생 나락으로 떨어뜨린 해외진출

지난 7월 수원에 입단한 이천수가 차범근 감독과 악수를 하고 있다.

ⓒ 수원삼성 블루윙즈

모든 발단은 이천수의 지나친 자신감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겸손과 절제가 뒷받침되지 않은 그의 빗나간 자신감은 때로 정제되지 않은 언행으로 불필요한 논란을 부채질했다. 축구보다는 연예인과의 열애설이나 술집 폭행파문 같은 축구외적인 일로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프로선수로서 자기관리에 철저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재능과 실력은 뛰어났으나, 정작 말이 실제보다 더 앞서는 이천수에게 팬들은 조롱을 퍼부으며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축구경력에 '비상의 날개'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두 차례 해외무대 진출의 연이은 실패는 화려했던 이천수의 축구인생을 오히려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전환점이 되고 말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출했던 2004년 스페인 무대에서의 실패는 젊은 날의 시행착오로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2007년 구단과의 갈등과 숱한 우여곡절 끝에 성사시킨 두 번째 네덜란드 무대 도전은 이천수 개인에게나 팬들에게나 실망 그 자체였다.

'네덜란드를 발판삼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하겠다', '스페인에서의 시행착오는 두 번다시 없다'며 호언장담했던 이천수는 정작 '향수병' 운운하며 팀에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반년도 안 돼 페예노르트에서 전력 외 선수로 분류, 또다시 K리그로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축구실력도 실력이지만 '용병'으로서 다른 리그와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선수의 자질이건만 정작 이천수는 여전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나마 첫 번째 컴백이던 2005년에는 은사인 김정남 감독의 든든한 후원을 등에 업고 K리그에서 명예회복에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우군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차범근 감독은 이천수가 해외에서 방황하던 시절에도 그의 재능을 각별히 아끼는 마음에서 자신의 품으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정작 이천수는 뛸 수 있는 몸 상태도, 마음가짐도 준비되어있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엔 유럽무대에 진출했던 이동국까지 돌아와, K리그 명문 구단들이 거액을 들여 '실패한 해외파들의 뒤치다꺼리' 무대가 되었다는 여론의 비판이 쏟아졌다.

재능만 믿고 교만한, 축구계의 이카루스

그나마 이동국은 성남 입단 직후 김학범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으며 꾸준한 출전기회를 잡았다. 활약은 기대에 못미쳤어도 팀훈련이나 동료들과의 융화에는 성실한 모습을 보였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천수는 말 그대로 입단 이후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부상과 훈련부족으로 2군에 내려앉은 이후로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끝내는 차범근 감독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수원과 K리그에게나 결국 오점만 남긴 재회였던 셈이다.

이천수의 몰락은 프로세계에서 철저한 노력과 자기관리가 받쳐주지 않은, 결국 재능이란 '모래 위의 성'과도 같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브라질 국가대표였던 아드리아누(인테르)와 호나우지뉴(밀란) 등은 한때 세계축구를 호령하던 슈퍼스타였다. 그러나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자기관리 실패와 방탕한 사생활로, 나란히 몰락하거나 한동안 계속된 부진의 터널에 빠져들어야했다.

이천수의 사례는 앞으로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유망주들이 결코 되풀이해서는 안 될 반면교사인 셈이다.아무리 재능 있는 선수도 결국은 '팀이 필요로 하는 선수'가 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자신의 재능만을 믿고 교만하다가 추락한 이카루스가 되어버린 이천수의 현실이 안타까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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